장정의 내용에는 조선을 ‘속국으로 규정하였고.
근대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세력과 식민지화를 주도한 세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논쟁은 다른 듯하지만.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
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정치권에서 제기된 식민지 책임론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다.이들은 동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보다는 일본을 모델로 해서 근대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도 이미 너무 늦었다.당시 일본 문서들을 보면 일부 정치인들의 ‘정한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속에 한국의 식민지화라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조선 식민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가.
연구와 논쟁은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사이트가 시민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동호문답』) 정치를 통해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 되게 하고 학문을 통해 후세의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참선비라고 하였다.
특히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온갖 개혁적인 저서를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도 두 분은 유사점이 많은 학자요 참선비였다.(‘속유론) 율곡과 다산의 참선비론은 일치한다.
참선비들이 많아 바른 세상으로 시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중앙포토] 어진 재상(賢相)은 오늘로 보면 총리나 장관 등 고관대작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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